정말 오래간만에 밖에 나가서 술 마시고 놀았다. 아는 언니가 정취 있는 아삼 골목에서 피자를 사준다고 불러낸 것이다. 그간 내가 독일 운하 이야기를 쓴 보답이라는데 난 영 부끄러웠다.
밤비가 내린다. 이제 가을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한국에도 비가 왔다고 한다. 시청도 비를 맞았겠지. 헐려나간 부분을 덮어주지 않아서 속까지 젖었겠구나. 이제 태평홀은 가만 둬도 기다리기만 하면 저절로 허물어질 것인가?
시청의 일부분이 기습적으로 헐려나갔다는 기사를 보고 설마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잠시 후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엄마, 나 키가 자꾸 클까봐 걱정이야."
“걱정 마. 넌 친할머니 닮아서 더 클 거야."
“지금 누구 약 올리는 거야?”
우리 아이들은 둘 다 난독증이 있다. 독일 시댁 쪽으로 난독증의 내력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뮌헨은 빈부격차가 심한 도시고요, 게다가 운이 나쁘게도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보리스 베커(왕년의 테니스 스타)가 살던부자 동네랑 가까워서 무섭게 돈 쓰는 사람들을 좀 접했네요. 그런 집 아이들은 부모랑 똑같이 돈을 뿌리고 다니지요.
나는 내가 쓴 글을 즐겨 읽는다. 두고두고 문장을 손보고 다듬는 재미도 재미지만, 마치 남의 내면을 훔쳐보듯이 그 글을 썼던당시의 내 심리를 엿보는 맛도 새삼스럽다. 나는 독일어로 작문하다가 실수로 글이지워지면 암만 많은 양이라도 똑같이 그대로 다시 쓸 수 있지만,
나의 모교인 칼스루에 공대는 독일에서도 유일하게 건축과 전교생에게 집중적인 실측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다. 학생들은 소정의예비교육을 받은 후, 1주일 동안 어느 경치 좋은 시골 동네에 가서 합숙하며 문화재 건물을 실측하는 실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