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를 통해 하네스는 여성의 몸을 천천히 정복해 나갔다. 그녀가 그와 사귀고 싶다고 말한 그 이튿날 밤에, 그는 그녀의 입술을정복하였다.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자신의 입술과 혀로 느껴보기도 하였다. 모든 속도를 그에게 맞추기로 결심한 그녀는 그가스스로 그녀의 혀를 찾아 들어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며 욕망을 자제했다. 하네스는 그녀의 영원한 남자가 아니라 잠시 그녀의 곁에 머무르다 떠날 남자였다. 앞으로 많은 여자를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할남자였으므로, 그녀는 그가 고유한 섹스 스타일을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것이 그녀가 그의 첫 여자로서 주는 선물이라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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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을 한번 열어 보인 이후, 미라와 남편은 일상적인 일로 대화할 적에 가끔씩이라도 시선을 교환함으로써적대감정이 누그러졌다는 것을 표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외에는 다람쥐 챗바퀴 도는 일상이 평범하게 지속되었다. 밖에서 돌아온 남편이 그녀에게 책을 한 권 내밀었다. 독일의 상속법에 관한 해설집이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을 경우에, 부모의 유산은 죽은 자식의 배우자가 상속하는 게 아니라 손주들이 직접 상속하게 되어 있어.”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누르며 물었다. “독일의 상속법이랑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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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한산했다. 단정한 제복을 입고, 생생한 표정으로 근무하는 공항직원들이 여행객보다 더 많이 눈에띄었다. 가끔씩 한 무리의 탑승객들이 우르르 몰려 나오고 나면 또 한참은 조용했다. 인파가 적어서 더욱 크고 으리으리하게 보이는홀에서 서성이며 미라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한국발 비행기가 도착했다고 표지판이 반짝반짝 신호를 주고 있었다. 드디어 자동문이갈라지며 승무원들이 검은 가방을 돌돌 끌면서 나오고, 조금 후엔 일반 승객들이 하나 둘씩 산더미같이 짐을 얹은 밀차를 밀며나오기 시작하였다. 어쩜 비행기를 타지 못하신 건 아닐까 걱정이 들 무렵에서야 어머니는 모습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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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소담스럽게 왔다. 방울이 달린 털모자를 쓰고 현관에 들어서는 남편의 뺨이 소년처럼 발그스름했다. 미라는 그의 찻잔에 차를따랐다. 그는 자리에 앉으려다 말고, 그녀의 입술에 쪽 소리나게 키스했다. 찻잔에서 김이 올라와 촛불에 일렁거리다가 클레츠머의선율에 흡수되었다.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음악에 잠시 귀를 기울이던 그는 문의가 들어온 건물에 대한 고문서를 발견했느냐고물었다. 그녀는 자료를 정리해서 보고서를 쓰는 중이라며, 운이 좋으면 내년에 돈을 버는 일거리로 연결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그가 손을 뻗쳐 장하다는 듯이 그녀의 등을 쓸었다. 그리고는 찻잔을 들여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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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에서 폭발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신랑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할린은 소련이 되었기 때문에 그가 나올 수도, 내가들어갈 수도 없다고 한다. 나는 무서운 시댁으로 되돌아가 신랑을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그이는 살아만 있다면 내게로 돌아올사람이다. * 그래서 나는 뺨에 흙이 묻지 않고, 손바닥이 보드라운 남자와 헤어진다. * 그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아이가 섰다는 걸 안다. 신랑의 아이를 잃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나는 이제는 시댁으로 돌아갈 수 없다. * 뺨에 흙이 묻지 않고, 손바닥이 보드라운 남자는 나를 찾기 위해서 시골에 온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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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미라는 혼자서 밤외출을 하였다. 젖먹이 때문에 엄두를 못 내는 미라를 남편과 아이들이 억지로 밀었다. 시내에 있는자그마한 술집에 들어서는 순간, 왁자지껄한 소음 밑에 깔려 있는 낮은 음율이 그녀의 몸통을 울리고 지나갔다. 구석에 마련된간이무대에서, 머리를 허리까지 늘인 남자가 단정한 자켓차림으로 첼로의 줄을 고르고 있었다. 빈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그녀는무대 뒤쪽에 놓인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조금 더 일찍 올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녀의망막에 습관처럼 붙어 있는 젖먹이의 얼굴을 애써 지우며, 그녀는 오래간만에 자신의 음악과 다시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하기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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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풀밭이 되고 싶다는 미라의 염원이 이루어진 장소는 칼스루에의 공원이다. 소설의 이 장면은 실지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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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소설을 읽어주신 독자들을 위하여 시놉시스를 올립니다. 시놉시스는 제가 출판사를 찾으려고 노력할 때 작성했는데, 쓰다보니 자기 글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재미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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